옥동 댁 - 김용현저
댕기풀어 옥비녀 꽂고 족두리를 얹는다
열여덟 윤씨네 홀어머니의 맏딸
나주평야 부농의 맏아들 총각선생과 혼인하는 날
3년 동란도 막바지, 포로 석방하고 휴전될 즈음
총멘 순경들 들이닥쳐 신랑을 뒷산으로 끌고 간다
누군가로부터 밀고가 들어왔다나
잠시 뒤 총성 메아리치고 하늘 무너져 내린다
골육상쟁 어수선한 세상의 억울한 죽음이다
장례 후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권유에도 귀를 막고
중시하 시동생 넷 머슴까지
종갓집 살림 청상의 슬픔 길을 잃는다
예물로 가져온 발 제봉틀 옷을 짓고
솜씨 빼어나 삯바느질도 하는 사이
큰 서방님네 아들과 딸 쌍둥이 양자삼아
키워 가르치고 여위살이 하기까지
세상은 남편과 함께 사는 게 아니라
그냥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일 속에 파묻혔던 몸 고장 나서 병원신세
재봉틀 밟아대던 오른쪽 무릎 수술했으나
관절이 꺾이지 않아 뻗정다리 끌고 다니며 웃는다
밤마다 허전한 가슴 조각보처럼 기워가며 산다
환갑날 열녀 윤 정, 이름 두 자 돌비에 새겨진다
시조부모 시부모 모두 90세 넘도록 모시니
열녀효부 났다 본을 삼는다
어려서 큰댁 가면
"도련님, 도련님!" 소리 얼마나 듣기 좋던가
"작은 서방님!" 소리 요즘 들으면 어찌나 민망한지
90세, 뒷마루에 걸터앉아 지는 해 바라보다가
"석양이 참 곱네요, 작은 서방님"
눈가에 갇힌 세월이 말문을 튼다
저 풀꽃 한 송이
개인시집 (쓰는 시 말고 사는 시) 중에서
출처 : 수지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