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 김용현 저
"야, 이새꺄, 또 헐래? 엉? 또 헐 꺼여?"
스물다섯 살 난 경민이가 자기네 집 머슴 박씨의 배를 깔고 앉아서 양쪽 뺨을 싸대기 친다. 논매기 중에 점심을 먹고 쉬는 참이라 이십여 일꾼들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는다.
"야 이 병신아, 새경 받어가꼬 또 재끼해 볼 꺼여, 엉? 대답해, 대답해 새꺄!"
텁석부리 오십대 박씨가 오만상을 찌푸리고 손바닥을 부비며 다시는 안 하겠다고 빈다. 경민이 근동에서 완력가로 소문난 잡놈이라 술에 취한 그에게 가타부타 끼어들 사람이 없다.
보다 못해 친구인 내가 나섰다. 태권도가 2단인 경민을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지네 머슴이 해마다 노름으로 새경을 다 날린다 해도 이대로 두면 사람을 다칠 것 같다. 나는 경민의 뒤에서 주먹으로 등짝을 힘껏 내리쳤다.
"억, 누구야? 영필이 너, 니가 나를 쳐?"
발딱 일어서더니 비틀 거리며 내게 덤빈다. 나는 슬슬 뒷걸음 질로 그를 유인했다. 일단 집밖으로 나오자 도망치듯 100여 미터를 걸었다.
'영필이 너, 거기 서! 거기 안 서! 니가 나를 쳐? 너 이 새끼, 오늘이 니 재삿날이다."
고함을 치며 쫓아온다. 일꾼들과 마을 아낙이며 아이들까지 달려 나와 금세 구경꾼이 4,5십 명이 모였다. 길가에서 3미터쯤 되는 언덕아래 둠벙이 있는 곳에서 멈추어 섰다. 내가 싸울 태세로 권투자세를 취했다. 경민이도 태권도 자세를 잡고 내게 덤볐다. 키도 나보다 크고 살집도 좋은 경민이 먼저 옆차기로 내 허벅지를 찼다. 순간 놈의 한 쪽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언덕 아래로 굴렀다. 졸지에 중심을 잃은 놈이 나와 함께 키를 넘는 둠벙으로 빠졌다. 나는 재빨리 헤엄을 쳐서 물 밖으로 나왔다. 놈이 허우적대며 물가로 나오려 하자 나는 발로 머리통을 밟아버렸다. 놈이 반대편으로 헤엄쳐 가는 동안에 나는 먼저 가서 기다렸다가 둑을 잡은 손을 발로 힘껏 찍어댔다.
"경민이 너, 그 동안 못되게 군 것 오늘 다 갚아 줄게. 오늘이 내 제삿날? 야 임마, 오늘이 니 제삿 날이다. 썅!"
머리통을 또 밟았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경민을 보고 구경꾼들이 고소해 하며 혼 좀 내 주라고 성원한다. 썩은 쥐가 떠다니는 더러운 물 가운데서 기운이 빠져 물을 삼키며 콜록거린다. 둠벙 둑으로 그의 여동생 경실이 와서 내 손을 잡고
"오빠, 우리 오빠 좀 살려 줘! 오빠, 오빠..."
울면서 사정한다.
이만하면 되겠다 싶어 경민의 손을 잡고 끌어냈다. 숨을 몰아 쉬는 경민에게 미안하다고 시과했다. 경민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경실이 오빠를 부축해 집으로 간다. 마을사람들이 가라지 노릇 어지간히 하더니 꼴좋다며 영필이가 최고라고, 잘했다고 한마디씩 한다. 텁석부리 박씨가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내뱉으며 일꾼들과 함께 들로 나간다.
이튿날 새벽,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서 경민이에게 가서 몸은 좀 어떠냐고, 어제는 서로 술에 취해서 실수를 했노라 사과하라고 당부를 하셨다. 내가 가서 사과를 했더니 멋쩍게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며칠 후 경민이 마을을 떴다.
세월이 흘러 서로 헤어진 지 55년이 지났다.
언젠가 추석을 쇠러 고향을 찾았는데 마을 어귀에 못 보던 팔각 정자가 산듯하게 세워져있었다. 노인 셋이 앉아 한가롭게 쉬고 있기에 인사를 하고 정자 세운 사연을 들으니 경민이가 정자 세울 돈과 땅값을 희사했단다. 서울 노량진 어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공부를 해 경매사가 되었단다. 돈을 많이 벌어 냉동 창고도 운영하고 사람이 얼마나 겸손한 지 사람팔자 참 묘하다고 허허 웃었다.
친구 경민이가 잘 살고 있다니까 고맙고 자랑스럽다. 부디 건강하여 노후를 편안하게 지내기를 빌어본다.
저 풀꽃 한 송이
개인시집 (누군가 강을 건너고 있다) 중에서
출처 : 수지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