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 김용현저
내일 포크레인과 잔디가 들어올 것이다. 점집을 하는 고모가 할아버지의 산소를 이장해야 아버지의 치매가 낮는다고 해서다. 쉰 몇 살부턴가 일흔살 오늘까지 집나간 아버지 찾아오기를 수없이 되풀이 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늙은 어머니가 뒷수발을 하느라 죽을 지경이시다. 사흘 전에도 밤중에 없어진 아버지를 면 소재지 지구대에서 연락이 와 모셔왔다.
오늘 아침 일찍, 다니던 절의 비구니로부터 이장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가 왔다. 스님이 기도를 해보니 이장할 필요가 없어서 장비를 취소하고 잔디도 들이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어머니와 상의해서 나는 일단 이장을 미뤘다. 오늘도 아버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허공에 대고 김일성을 찾고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스님이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서 단둘이 만난다.
"할아버지, 이 방에는 우리 둘 뿐이니까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응..."
나는 어머니와 아내랑 방문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다.
"나는 할아버지를 통해서 옛날 일들을 다 볼 수 있는 공부를 했어요. 내가 보니까 할아버지가 쉰 살 때쯤 산길에서 누구랑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것이 보이는데 왜 싸웠어요?"
"안 죽였어. 허억, 그런 일 없어. 허억..."
아버지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게 들린다.
"그 남자랑 산에서 싸우다 할아버지가 밀쳤는데, 그 사람이 뒤로 넘어지면서 돌덩이에 머리를 다쳤지요? 피를 흘리고 정신을 잃으니까 목을 졸랐지요? 다 보여요, 지금. 왜 싸웠어요, 할아버지? 눈 돌리지 말고 스님을 보고 말해 봐요. 아무한태도 말 안할게요. 다 지나간 옛날 일이라 이제는 괜찮아요. 스님이 할아버지 병 고쳐 줄게요."
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헉, 그 자식이, 허억, 그 자식이 내 몫을 안 주고... 혼자 먹으려고 해서... 헉..."
"무슨 몫을 안 주려고 했어요?"
"어어, 소 판 돈, 소 판 돈을... 소장수를 어어, 같이 했는디..."
"이득금을 똑 같이 나누기로 했는데, 여러 번 할아버지 몫을 안 줘서 싸웠고, 넘어지니까 목을 졸라 죽였어요? 그러고는 돈뺐고 무엇으로 덮었어요. 할아버지?"
"헉, 허억..."
"자 이거 드시고 누워서 좀 쉬세요, 할아버지. 이제 알았으니까 할아버지 병은 나을 거예요."
스님이 가져간 식혜 깡통을 따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스님이 방을 나오자 어머니가 남편이 젊었을 때 그 사람과 소 장사를 같이 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던 걸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며'세상에, 세상에나'를 연발하신다.
스님은 아버지를 모시고 절로 가자고 하신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스님의 조그만 암자로 돌아오자 부처님이 있는 법당에다 간단한 제사상을 차리라고 하신다. 가사장삼을 걸친 스님이 할아버지에게 상 위에다 '학생부군 김만식신위'라는 위패를 세우게 한다. 나는 부처님 앞에 스님이 말씀하신 기도 비 봉투를 올렸다. 그 돈은 원한에 사무쳐 저승을 못 가고 이 십여 년 간 아버지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 영가를 천도하는 노잣돈이란다. 스님은 제사상 앞에 꿇어앉은 아버지에게 망자를 향한 사죄의 말과 함께 용서를 구하는 절을 시킨다.
"만식씨, 그때 내가 잘못했소. 용서하시고 극락왕생하시오. 순간에 잘못 판단하고 만식씨를 그렇게 보내고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소. 미안하오, 용서하시오, 용서해 주시오, 만석아.... 흑흑흑."
스님이 목탁을 치고 요령을 흔들며 축원을 하신다. 영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저승길을 열어 주니 극락왕생하기를 발원하는 동안 우리도 부처님 전에 백팔 배를 올렸다.
스님은 기도가 끝나자, 아버지에게 김만식씨가 주는 술이라며 제사상에 올린 술잔으로 음복을 시킨다. 아버지의 호흡이 느슨해지고 표정이 밝아진다.
"후우, 후... 인자 내가 살것다. 후우우..."
아버지의 얼굴이 편안해지고 호흡이 거짓말처럼 고르다.
"이제 마음이 편안하시지요? 그 동안 그 무거운 죄를 짊어지고 사시느라 고생이 많았어요. 할머니도 아들, 며느님도 지옥 같은 세상을 사셨고요. 집에 가시면 아버지한테 송아지를 한 마리 사 드리세요. 소일거리 삼아 잘 키우시도록!"
한 달 후, 스님이 아버지를 찾아와 부적을 바꿔 지니게 하고 축원을 해주신다. 남편이 송아지와 염소를 키우며 변소 길도 혼자 다닌다고, 어머니는 스님의 손을 잡고 놓지를 않는다. 마을에서는 어떻게 그 양반이 치메가 말짱하게 나았는지 모두들 신기하다며 스님의 도력에 칭송이 자자하다.
저 풀꽃 한 송이
개인시집 (누군가 강을 건너고 있다) 중에서
출처 : 수지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