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 - 김용현저
나는 척추협착증 수술 후 한 달째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병실 밖 한쪽에 등나무 쉼터가 있어 답답하고 지루할 때면 나가서 환우들과 한담을 하고는 했다. 거기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키가 큰 환자를 보았다.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그의 뒤쪽에는 부인으로 보이는 보통 키에 등이 굽은 여자가 그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는 한숨을 자주 쉬며 가래를 내뱉고 캑캑거리다가 말없이 병실로 들어가고는 했다.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으나 허우대가 멀쩡하고 걸음걸이도 정상으로 보였다. 부인은 마치 죄인처럼 그의 눈치를 보며 뒤를 따라다녔다.
그러던 그가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는 혼자 있는 내 곁으로 오더니 방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그도 혼자였다.
"폐쇄병동을 압니까?" 경계하는 내 안색을 살피며 걸걸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폐쇄병동이요? 잘 모르는데요." 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동안 선생을 보니까 편안해 보여서, 누구한테도 말 안했는데 답답한 얘기 좀 하려고요."
"예, 고맙습니다. 무슨 얘긴가요?"
나도 궁금하던차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올해 칠십인데요. 형편이 안 돼 국민 학교만 졸업하고는 집에서 농사를 짓다가 군대를 갔어요. 군에서는 보안대 생활을 했고 제대하고는 수박 접붙이기를 배웠어요. 그걸로 돈을 좀 벌어서 결혼을 했지요. 내가 촉이 좀 빨라서 수박 밭떼기 장사로 일을 바꿨는데 한참 잘 나갔지요. 그러다가 단무지용 무장사를 해서 꽤 큰돈을 굴렸어요. 집도 짓고 상가도 지어 세를 놓았지요. 그새 딸 셋을 낳아 시집도 보냈어요. 그런데 나는 안 믿지만 원래 장인이 목사라서 마누라가 애들까지 다 교회로 끌고나가 전부 교인들하고 사돈을 맺었어요."
가래를 뱉고는 가슴이 답답한지 한숨을 쉬었다.
"축복받은 집안이네요. 허허." 웃으며 그를 쳐다보자
"내참,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네요. 글쎄 큰사위가 목사인데, 교회 세울 돈을 밀어달래서 거절했어요. 그랬더니 어느날 밤에, 구급차에서 덩치가 큰놈들 넷이 내려오더니 나를 강제로 차에다 밀어 넣는 거요. 반항하는 나를 억지로 주저앉히고 테이프로 입과 눈을 가리데요. 두 팔을 밧줄로 옴짝 못하게 묶고는 어디론가 막 달리는 거요." 또 기침이 나와 쿨룩거렸다.
"그래서 간 곳이 폐쇄병동이었어요? 큰 사위가 시킨 거군요?" 물었더니
"예, 고 새끼가 딸년이랑 짜고 나를 거기 독방에다 집어넣은거요. 만약에 반항을 하거나 바른 소리를 한 마디라도 하면 쇠몽둥이로 패고 밥도 안 주고 저녁마다 머리가 띵하니 몽롱해지는 주사약만 찌르고." 지난 일을 회상하자니 끔찍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 얼마나 갇혀서 지낸 거요? 아무도 면회를 안 왔어요?"
"면회요? 내가 거기 갇힌 줄을 아무도 몰랐지요. 꼭 8개월 13일 만에 나왔어요. 세상이요. 아주 무서운 세상이요. 법이 무슨 얼어 죽을 개뼈다귑니까?" 그가 쿨룩거리며 막된 세상에 대한 분노를 마구 쏟아냈다.
"거기에서는요. 때려죽이고도 자살로 만들어서 내보내면 그걸로 끝이어요, 끝."
"그런데 어떻게 나온 거요, 이렇게?"
"나는 정신이 말짱하니까 내보내달랬더니 두 놈이 나를 묶어 놓고 번갈아가면서 발로 차고 작신작신 밟아대더라고요. 그러다가 맹장이 터져서 마구 뒹구니까 곧 죽을 걸로 판단해서 밤에 나를 병원에다 맡기고 몰래 도망쳐버린 거요."
"그럼 경찰에 신고는 했어요? 하니까 코웃음을 치며
"경찰, 검찰 다 소용없어요. 그것들이 도대채 내 말을 믿으려고 안 해요. 도망친 그놈들이 병원 웅굽실에다 정신병원 수감자라고 기록을 해 놓아서 날보고 미친 소리 그만 하라는 거요, 내참. 개뼈다귀 같은 새끼들."
"그래, 그 사위는 찾았나요?"
"그 자식은 내 인감으로 내 집과 상가등기를 저당설정해서 대출을 받아 딸년이랑 중국으로 튀었대요. 마누라도 한통속이었더라고요. 나중에 딸년만 성병으로 한국에 돌아와 어디서 뒈져간다는데 들여다 보기도 싫었어요."하고 고개를 내두르며
"그런데 문제는 저 마누라요. 저게 교회에 미쳐서 한 달 전에 내 통장을 훔쳐 가지고 도망쳤어요. 지네 친정아버지 교회증축에 헌금하러 나갔다고 하기에 내가 찾기만 하면 죽으려고 아예 밥을 안 먹고 13일간을 소주만 먹었는데 죽지도 못하고 여기로 실려 왔네요." 그가 내 손을 잡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화병이 들어 간이 붓고 장기가 제 기능을 못한다고 했다. 속에 담았던 말을 털어놓은 후 조금은 후련한 듯해 보였다.
눈동자가 풀린 시선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만 뿜어대고 있는 그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 주고 나는 일어서서 허둥허둥 병실로 돌아왔다.
저 풀꽃 한 송이
개인시집 (누군가 강을 건너고 있다) 중에서
출처 : 수지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