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강을 건너고 있다 - 김용현저
밤 열 시, 현수는 하숙방에서 다섯 명의 5학년 학생들의 과외 지도를 마치고 대폿집을 찾는다. 종일 손님을 치른 예림의 어머니는 안채로 건너가 일찍 잠자리에 든다. 예림이 가계 방에서 재봉틀로 동양자수를 놓고 있다가 환하게 웃으며 현수를 맞는다.
따끈한 비지장과 막걸리를 목로에 차려 놓고는 다시 재봉틀 앞에 앉는다. 무슨 수를 놓느냐고 궁금해서 물으니 봉황이란다. 현수는 속으로 여기가 봉황동임을 떠올린다. 일전에 이름을 물었을 때 어머니의 성을 쓴다는 말도 기억에서 더듬어 본다. 현수는 그녀의 애수어린 눈빛을 바라보며 혼자서 대폿잔을 비우고 일어선다. 늘 마지막 손님이라서 귓전으로 가계의 문 닫는 소리를 들으며 하숙방으로 돌아온다.
벌써 석 달째, 겨울도 지나 개학이 내일 모래다. 기예림, 그녀가 눈에 밟혀 향우회의 선순이나 문학회원 수지의 차대접도 사양하고 밤마다 그녀를 찾는다.
개학을 하고 바쁜 일정을 마친 오월 어느 일요일 오후다. 두 사람은 산뜻한 차림으로 손을 잡고 곰나루의 백사장을 거닌다. 현수는 예림의 어깨를 감싸 안고 봉황을 언제 날려 보내려는가 묻는다. 예림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도리질한다. 재두루미 두 마리가 풀숲이 우거진 강가에서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주위는 적막하고 인적도 없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숲에 이르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포옹을 한다.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입술을 포갠다. 능금을 께물어 과즙을 삼키듯 깊고 긴 입맞춤을 한다. 현수는 한 마리 새처럼 몸을 떨며 숨을 몰아쉬는 예림을 안아 풀숲에 눕힌다. 꿈꾸듯 오빠를 부르며 예림은 현수의 몸을 받아들인다. 두사람은 센 물살을 가르고 힘차게 노를 저어 강을 건넌다.
저 풀꽃 한 송이
개인시집 (누군가 강을 건너고 있다) 중에서
출처 : 수지나라
